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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회의소는 7년 동안 시범 사업을 거치는 동안 전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새 정부의 농정 개혁 드라이브에 발맞춰 법제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8일 거창군농업회의소에 익산시 농업회의소 설립추진단이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협치 시스템인 ‘농정 거버넌스’ 구축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주요 농정 과제다.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공언한 새 정부의 ‘농정 개혁’ 퍼즐 조각 중 가장 앞줄에 놓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일환에서 논의되는 대통령 직속의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농특위) 설치, 농업회의소 법제화 등에 대한 농업계의 기대도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농민 대의기구를 표방하는 농업회의소의 경우 20년 전인 1998년 관 주도의 법제화 추진에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는 데다 일부 지역의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20년 만에 맞은 법제화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다.
농업회의소란
정부 하향식 정책 결정 제동
농민들 농정파트너로 직접 참여
농민단체 아닌 공적기구로
지원은 하되 자율·독립성 보장
▲농업회의소가 뭔데?=농업회의소는 쉽게 말해 ‘협치 농정’을 구현하기 위해 농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의기구다. 이른바 정부 주도의 하향식 정책 결정이 가지는 한계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관 협치를 위한 농정 파트너 개념으로, 경제 분야의 상공회의소를 떠올리면 된다. 일본과 유럽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향식 정책 추진 모델로 농업회의소를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농정 지형은 농업 단체, 농협, 농업 관련 기업 등 여러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어 사안에 따라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각각의 의견들이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갈등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체나 농협 등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농업·농촌 구성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쉽지 않은 여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앙 및 지방 행정이 갖는 권한이 막강해 실질적으로 농업 현장의 이익과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기보다 성과 중심의 행정에 끌려 다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농업회의소는 이런 문제점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농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 하나, 일반 농민들이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농업회의소는 농민 단체가 아니라 공적 기구라는 점이다. 농민 편에 가깝게 있지만, 농민과 행정 중간에 위치해 의견과 사안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서비스 기능을 수행하면서 농민이 농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기구다. 운영 및 지원과 관련돼 일정 부분 정부에서 지원을 받지만, 인사권과 운영권을 농민에게 전적으로 맡겨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있다.
정부는 2010년부터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을 실시해 현재까지 광역 2개소, 시군 22개소 설립·운영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사례가 있는 반면 재정 마련의 어려움과 지자체와의 갈등 등으로 문을 닫는 사례도 나타나는 등 지역 여건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시험 무대에 올라 있다. 최근 들어 새 정부의 농정 개혁 드라이브 등과 발맞춰 농업회의소 설립 움직임과 법제화 추진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법제화 필요성은
지자체, 법적효력 없으면
인건비·운영비 등 지원 못해
재정 안정화돼야 사업 활성화
농민 관심·참여도 제고 기대
▲법제화, 그거 꼭 필요해?=2010년 시작한 시범사업이 7년 동안 진행되면서 농업회의소를 바라보는 농업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 농정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농정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긍정 평가의 대표적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가 거창군농업회의소다.
2012년 4월 설립된 거창군농업회의소는 올해로 5년째 운영하면서 지역 농정의 한 축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지역 및 농정의제 정책 제안, 지자체 농정위원회 참여 등으로 지역 농정에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으며, 교육 및 홍보 사업 등 자체 사업을 펼치며 농업회의소의 성공적인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약 800명의 회원들로부터도 호응을 받고 있다.
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은 법적 근거가 체계화되면 농업회의소는 지금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훈규 사무국장은 “법제화가 되면 농업회의소 운영 면에서 숨통이 트일 것”이라며 “회의소가 할 수 있는 사업들을 규정해주고 여기에 따른 운영비나 인건비를 지원하게 되면 실제 집중할 수 있는 인력 발굴과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인 매뉴얼을 일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지방 정부도 지원해 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현행 지방재정법 규정에 따르면 농업회의소는 인건비와 운영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법제화를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이런 문제들이 풀릴 것이란 얘기다.
농업회의소의 평균 가입률이 10% 정도에 그치는 부분도 개선 여지가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사무국장은 “현장에 가면 대부분 고령농이다. 회의소나 분과위원회 참여가 사실상 어려운 분들이 많다. 회의소가 장기적으로 20% 정도 활동하는 농민들이 전체 농민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가야 할 것”이라며 “법적 근거를 갖게 되면 회원들의 관심을 높이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법제화를 둘러싸고 농업계 일부에선 우려도 있다. 우려를 나타내는 쪽의 입장은 농업회의소의 자율성과 독립성 역량이 미흡한 여건에서 법제화를 추진할 경우 애초 취지와는 달리 또 하나의 ‘관변단체’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다. 재정적 어려움과 지자체와의 갈등 등으로 문을 닫은 일부 시범사업 사례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법제화가 되고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서 농업회의소가 다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범사업에서 보여주듯이 어떤 지역은 시행착오를 겪는 곳도 있고, 무너지는 사례도 있을 것”이라면서 “법제화가 이뤄지면 행정에 발목이 잡힌다고 보는 우려가 있는데, 법을 제정하고 장기적으로 바로 잡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법제화 이후에도 현장마다 갈등은 또 있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이후 수많은 농업회의소와 지자체 간 갈등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그 갈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갈등과 부딪히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법제화를 시작으로 농업회의소 중 옥석이 가려질 것이고, 농정 전반의 틀이 잘 갖춰진 충남이나 전북에선 의미 있는 회의소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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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화 가능성은
문재인 정부 농정과제로 '주목'
김현권·이완영 의원 법안 발의
"야당 협조 하면 충분히 가능"
▲법제화 가능성은=그동안 농업회의소 설립 등 법제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현장 목소리와는 달리 부정적이었다. 지역 농정 주체들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방 정부의 경우 의회라는 공식 대의기구가 있는 만큼 농업회의소 설립이 탐탁지 않을 소지가 있고, 농협 등도 결집된 농민의 목소리가 자칫 농협으로 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박수를 치며 환영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1998년 정부가 주도한 농업회의소 법제화 추진이 무산돼 추진 동력도 한풀 꺾이며 농업회의소 법제화는 물 건너가는 듯 했다. 다행히 2010년 들어 정부 시범사업으로 농업회의소가 지역별로 만들어졌지만, 이때까지도 ‘제 풀에 꺾여 주저앉겠지’하는 시각이 많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농어업회의소 설립 법안이 발의되며 주목 받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입장은 농업회의소 설립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도입 시기에 대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가운데 농업회의소 설립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농정 과제로 20년 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농정 당국의 분위기도 달라졌고, 국회의 양상도 변했다.
20대 국회에서 2016년 8월 김현권 더불어민주당(비례) 의원이 농어업회의소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소관 상임위원회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수정안이 가결돼 상임위 전체회의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최근 11월에는 이완영 자유한국당(경북 고령·성주·칠곡) 의원이 수정안 중 설립요건 등을 강화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해 두 안을 병합 심사하는 등의 후속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태다.
연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 법제화 가능성에 농업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농업회의소의 참여율과 독립성 측면 등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협조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권의원실 관계자는 “이미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수정안을 가결한 상태이고, 이완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세부 내용을 제외하곤 이견이 조율돼 야당 의원들의 협조가 이뤄지면 법제화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국민행복농정연대 등은 12월 들어 각각 성명서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와 연관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야당이 농어업회의소 설립법안 등의 처리를 당론으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며 법안 처리에 야당이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촉구하는 등 농업계 여론도 농업회의소 설립의 조속한 법제화 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 조언
"농민 참여 농정 시스템 구축이 가장 큰 성과"
의견 수렴에만 그치지 않고
입장 조율 중재자 역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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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관 주도의 농정이 아닌 농민들이 농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정기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가 지난 7년 동안 진행된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의 성과들 중 첫 손에 꼽은 평가다. 농업회의소가 세간의 우려와 달리 애초 설립 취지를 충분히 살려낸 측면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정기수 상임이사는 “잘 되는 시군 회의소는 그 역할을 잘 하고 있고, 농민의 현장 목소리를 담아 농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시스템화해서 만든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덧붙였다.
정 상임이사는 “농업계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근거지로서의 농업회의소가 의미를 가진다”며 “또한 농업회의소라는 공간을 통해 농민들이 스스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점도 큰 성과다. 과거에는 농민단체 임원 중심의 입장이었는데, 회의소가 만들어지면서 일반 농업인, 여성농업인, 청년농업인들이 자유롭게 얘기하고, 내가 얘기하는 것이 일정 부분 농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고 전했다.
농업회의소가 다양한 의견 수렴에 그치지 않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부분도 정 상임이사는 높게 평가했다.
그는 “농민단체들도 토론하고 합의하는 문화가 생각보다 약하다. 농업회의소가 운영되면서 스스로 지역 농업 발전을 위해 협의하고 양보하는 문화가 생겼다. 행정 입장에서도 농정 파트너가 생김에 따라 농정 현안을 풀어가는 데 논의 비용 등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행정이나 개별 농민단체들이 할 수 없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농업회의소가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다만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농업회의소의 한계점에 대해 “전북 진안의 경우 1호 농업회의소인데 선례가 없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운영 과정에서도 일정 부분 농민단체 연합회 성격도 나타나 지자체와 갈등이 생겼고 이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됐다”며 “농업회의소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부분과 지자체장들도 회의소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조직 정도로만 생각하는 등 인식이 낮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향후 농업회의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 상임이사는 법제화에 대해서도 “법제화가 이뤄지면 이런 한계점은 완전히 풀리기는 어렵지만, 많은 부분이 풀릴 것”이라며 “법적 근거에 따라 위상이 달라질 것이고, 이에 따라 운영비와 인건비 지원이 이뤄지면 현재 여건보다 나아질 것이다. 가입률도 지금보다 높아질 것으로 본다. 다만 고령농 등이 많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끝>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