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 전부 농민 탓이라고만 하능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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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29 16:49 조회1,0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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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
“야~! 야~! 그만둬! 그만둬! 하지말래! 취소하란다!” “뭔 소리여? 갑자기!” “금방 면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어! 구제역 때문에 이번에 대보름 행사 다들 취소 좀 하라고! 달집 태우는 것도 하지 말라는구마!” “문디! 쌔빠지게 나무 해서 달집 다 만들어 놨구만! 이거 갑자기 이러면 어짠디여? 미리 좀 이야기를 해주던가! 여튼 공무원들 일하는 꼬라지들 보면 참나.” “다른 데서 찾아오는 사람들만 없으면 되지, 뭔 마을에서 하는 이런 행사도 못하게 한단 말이고? 달집 태우는 것이 그 뭣이냐, 한해 액을 없애고 복을 비는 것인디, 썩을 구제역이나 조류독감도 좀 물리치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니!” “큭큭! 자네는 입던 누런 빤쭈 태워 없앨라꼬 그라는 거 아닌감?” “그럼 속옷도 당연히 태워야지! 그건 그렇고 하지 말라고 대보름에 정말 아무 것도 안 해?” “읍내서 풍물패가 온다고 했는데 그건 그대로 해야겠지? 안그래? 간단하게 고사상이나 차리고 술이나 한잔 나눠 먹고 말지 뭐.” “동네 어른들 다 나오실 낀데 밥은 해먹어야지! 돼지고기라도 좀 삶고!” “음식 장만은 누가 다 할 끼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고기도 그냥 식당에서 조금 사오고 말아!” “그래! 설거지꺼리 그거 다 어떻게 할라고 그래?” “설거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1회용 용기 사와서 차리고 말어!”
우야든동 마을의 젊은이들이 품을 들여 산에서 나무를 갖다 재고는 다음날 큰 달이 높이 오를 제, 훨훨 태워 버릴 심사였다. 그 참에 모일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눠 마시고 각자가 빌 소원지 하나씩 나눠주고 말 참이었다. 구제역인지 뭣인지 겨울마다 찾아오는 신종 악귀가 농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역시나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초기 방역 실패! 조기 대응 실패!’ 하도 볶이고 볶이니 나랏일 보는 공무원들은 지레 겁을 먹고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사람이 모이는 것도 자제하라고 난리다. 소가 죽어 나가는 것도 키우는 농장주가 관리를 못 했니 어쩌니, 약을 주는대로 제대로 주사를 놨는데도 그 약물이 물백신이니 어쩌니, 고을마다 마을마다 보름 행사가 취소되고 그냥 보내기 섭섭한 마음에 곳곳에 둘러 앉아 마을만의 기풍으로 액땜굿을 했을 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정치하는 양반들은 영 서운한 참이라 그래도 어디 마을회관이라도 가서 엉덩이를 걸터앉아 이 치적 저 치적 들먹거려야 덜 서운한 표계산도 나올 판이 아니던가.
뜨뜻한 회관 안방이라야 노인들의 독차지니, 뜨거운 달집 불꽃 앞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취한 김에 흐느적흐느적 농무(農舞)라도 쳐볼 참이었던 마을의 중늙은 청년들은 괜히 회관 앞을 배회했다. “문디 툭 하면 농민들이 잘못했다쿠고, 여차하면 농민들한테만 조심하라쿠고, 그렇잖아도 마을에 술상 차릴 사람도 없는 판에, 행사도 다 취소 됐구만 찾아오는 양반들은 왜 저리 많은가 몰라! 우리꺼정 다 죽어뿌고 마을도 말캉 없어져버려야 돼! 농사지어도 대접도 못 받고, 살다살다 받은 돈도 토해내라 쿠는데, 농민들도 확 마 다 뒈져버려야 돼!” 연신 담배만 물고 빤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제일로 애국하는 것은 담배를 많이 피는 것 밖에 없다는 농도 던진다. 시커멓게 탄 사람들의 심정과 한 마디 한 마디 모가 난 아우성에는 아랑곳없이 저 산 만디에서는 희고 둥글고 납작한 달이 차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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